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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유전자가 현대 질병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유전자와 질병의 연결
    고고 2025. 3. 14. 14:36

     

    고대 유전자가 현대 질병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유전자와 질병의 연결

     

    1. 고대 유전자와 현대 질병: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인류의 유전자는 수십만 년에 걸쳐 진화해 왔다. 인류가 겪었던 환경 변화, 식습관, 질병, 생활 방식 등은 우리 유전자에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겪는 여러 질병들이 사실 고대 인류의 유전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 있다.

    고고유전학은 고대 인류의 유전체(DNA)를 분석하여, 현대인의 질병과 유전적 연관성을 밝히는 중요한 연구 분야다. 이를 통해 우리는 왜 특정 질병이 특정 인구집단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지, 그리고 인간이 과거 환경에 적응하면서 어떤 유전적 변화를 겪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형 당뇨병, 심혈관 질환, 자가면역 질환, 정신 질환 등은 현대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질병이지만, 이러한 질병들이 고대 인류의 생존 전략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인간이 과거 극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한 유전적 특성이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질병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유전적 흔적이 현대 질병과 연결되어 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고대 유전자와 현대 질병의 관계를 깊이 살펴보자.


    2. "절약형 유전자" 가설: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의 기원

    오늘날 2형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만성 질환 중 하나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질병이 특정 인구집단에서 더 높은 빈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원주민, 태평양 섬 원주민, 일부 아프리카계 및 남아시아계 인구에서는 2형 당뇨병과 비만이 유독 많이 발생한다.

    이와 관련하여 제기된 이론이 바로 "절약형 유전자(thrifty gene) 가설"이다. 1962년 유전학자 제임스 닐(James Neel)이 제안한 이 가설에 따르면, 고대 인류는 잦은 기근과 굶주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유전적 특성을 진화시켰다. 즉, 몸이 음식을 섭취했을 때 지방으로 빠르게 저장하는 방식으로 생존 확률을 높인 것이다.

    이러한 유전적 특성은 과거에는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비만, 당뇨병,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었다. 현대에는 음식이 풍족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좌식 생활을 하기 때문에, 과거 생존에 유리했던 유전자가 오히려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서는 PPARG와 FTO 유전자가 비만 및 당뇨병과 연관이 있으며, 이러한 유전적 변이가 과거 식량 부족 환경에서 자연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밝혀졌다.

    즉, 현대인의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은 단순한 생활 습관 문제가 아니라, 수만 년 전 인류가 겪었던 환경 변화와 유전적 적응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3. 면역 질환과 감염병: 유전자 속에 남은 생존 전략

    인류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감염병과 싸워 왔다. 흑사병, 천연두, 말라리아, 결핵 등은 인간 사회를 위협했던 대표적인 질병이며, 이러한 질병에 대한 생존 전략이 일부 인구집단에서 유전적으로 선택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부 유전자는 오늘날 자가면역 질환과 같은 현대 질병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흑사병 생존자의 후손이 자가면역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22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흑사병(페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럽인의 후손들은 특정한 면역 관련 유전자 변이(ERAP2)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유전자는 강력한 면역 반응을 유도해 흑사병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크론병, 류마티스 관절염과 같은 자가면역 질환의 발병률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말라리아에 대한 면역 적응이 오늘날 겸상적혈구빈혈증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었다. 말라리아가 만연했던 지역(아프리카, 지중해, 동남아시아)에서는 HBB 유전자 변이가 선택되었는데, 이는 말라리아 감염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 변이를 두 개 모두 물려받을 경우, 겸상적혈구빈혈증이라는 유전 질환이 발병한다.

    결국, 우리 조상들이 감염병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유전적 전략은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4. 정신 건강과 유전자: 우울증과 불안의 기원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과 같은 정신 질환은 단순히 현대 사회에서 증가한 것이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정신 질환은 인간의 생존 전략과 연관이 있으며, 특정 유전자가 자연 선택을 통해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5-HTTLPR 유전자는 세로토닌(행복 호르몬) 조절과 관련이 있으며, 특정 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유전자가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고대 인류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으며, 불안과 경계심이 높은 사람들이 생존에 유리했을 수 있다. 즉, 불안 장애를 유발하는 유전적 요인이 사실은 과거에는 생존에 유리한 특성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조현병과 관련된 일부 유전자(예: DISC1, CACNA1C)는 창의성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러한 유전자 변이가 예술적 창의성이나 문제 해결 능력과 연결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정신 질환 역시 과거 인류가 생존 전략으로 선택했던 유전적 특징이 현대 사회에서는 질병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결론: 과거의 유전자가 현대 질병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질병들은 단순한 환경적 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당뇨병, 심혈관 질환, 면역 질환, 정신 질환 등은 사실 고대 인류의 생존 전략에서 비롯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고고유전학 연구는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환경에 적응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유전적 변이가 선택되었는지를 밝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현대 질병의 기원을 이해하고, 보다 효과적인 치료법과 예방 전략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유전자는 단순한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인류의 건강과 질병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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